*관객모독, 페터 한트케 지음

반응형


희곡을 읽었다.
독특한 제목과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라는 두 가지의 특성 만으로도 낯설지만 묘하게 끌리는 책이었다.
이 책은 1시간 정도면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짧은 편이다.
간결하고 치밀한 문장은 속도감 있게 읽힌다.

책을 읽으며 ‘어떤 책일까? 어떻게 전개될까?’ 궁금해졌다.
그리고 그 궁금증은 책의 중반을 지날 때에도 풀리지 않았다.
책의 후반부를 읽고 마지막 문장을 읽으며 궁금증이 해결되었다.

[이 작품은 일종의 머리말입니다.
여러분이 아직 들어 본 적 없는 것은 여기서도 듣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직 본 적 없는 것은 여기서도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곳 극장에 오면 늘 보았던 것을 여기서는 전혀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곳 극장에 오면 늘 들었던 것을 여기서는 전혀 들을 수 없을 것입니다. p17]


이 책은 연극에 관한 희극이라 할 수 있고, 인간에 대한 희극이라 할 수 있고, 언어유희 곧 문장의 희극이라 할 수 있고, 시간에 관한 희극이라 할 수 있다.

연극이 시작되고 4명의 배우가 무대에 나온다. 그리고 말을 한다.
이들이 말하는 것은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이다.
어떤 사건이 전개되는 연극이 아니다. 그저 배우들이 ‘말’하는 연극이다.
배우들이 딱히 어떤 역할을 연기하는 것이 아니고 그저 말하는 것이기에 연기가 아니라고도 할 수 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으나 인식하지 못하는 사실들에 대해서 치밀한 단어들의 조합을 통해 말로서 전달해준다.
예를 들면, 연극을 보러가기 전의 사람들, 연극이 시작되는 때, 연극을 보는 도중의 사람들, 연극이 끝나고 집에 가는 사람들, 시간의 실체__연극 속 시간과 실제의 시간_ , 인간의 여러 모습 등.
연극을 보는 관객이 주제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누구나 관객이 될 수 있으며, 굳이 관객이 되지 않더라도 충분히 주제가 될 수 있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 인간에 대해 몇 페이지에 걸쳐 세세하게 나열한 부분. 다채롭기까지한 욕설(쌍욕아님)은 그리 불쾌하지만은 않다.
어떻게 극을 끝맺을지가 참으로 궁금했는데,
인생의 ​​“순수한 연기자”인 관객들에게 도리어 박수와 함성을 보내는 것에서 놀랐다 정말.
관객의 입장으로 책을 읽던 내게 조금의 감동이 일기도 했다.

책의 제목을 ‘관객모독’이라고 정한 이유에 대해 생각했다.
1. ‘연극’을 기대하고 온 이들에게 오히려 ‘여러분’이 주제라며 어떠한 연기가 아닌 말, 언어의 희극을 선보인다.
2. 누구나 한 두개 이상은 해당될 수 밖에 없는 욕설을 관객들에게 퍼붓고는 연극을 끝마친다.
관객들이 당황할 수 밖에 없을 이런 이유에서 제목을 붙였던 것은 아닐까하고 혼자 생각했다.

책을 읽을 때,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아내려 혹은 작품의 의미를 찾아내려 애쓰며 읽었던 것 같다.
그것도 물론 좋았지만.
책을 다 읽고나니, 그저 문장의 흐름과 내용을 음미 했어도 충분히 흥미로웠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의 숨겨진 혹은 드러난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책읽기의 목적은 아니었는데 말이다.
습관처럼 그런 생각을 하며 읽었던 것 같다.
다시 한 번 읽을 때는 그저 문장과 페이지를 넘겨가며 읽어야겠다.

반응형

'UnUsed > 다정한 자국'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댓글

Designed by JB FACTORY